[안종도의 음악기행 <94> 로베르트 슈만의 ‘이니히(innig)’]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한 단어…우리에게 필요한 내면의 가치
[안종도의 음악기행 <94> 로베르트 슈만의 ‘이니히(innig)’]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한 단어…우리에게 필요한 내면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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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톡
대학 여름 학기가 서서히 종강을 향해 간다. 필자가 재직 중인 음악대학 역시 실기시험 준비로 분주한 시기다. 음대 특성상 시험은 악기 연주로 치러지며, 학생은 한 학기 동안 갈고닦은 음악적 기량을 약 30분간 무대에서 평가받는다.학생이 자주 선택하는 레퍼토리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같은 독일어권 작곡가 작품이 많다. 이들은 단지 시험 곡목일 뿐 아니라, 공연계에서도 중심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서양음악사의 ‘코어’와도 같은 존재다. 수업 시간에는 이들 작곡가의 악보를 피아노 보면대에 올려두고, 작곡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학생들과 함께 긴 시간 들여다보고 토론하곤 한다. 독일어권 작취업후학자금대출신청불가
곡가의 작품인 만큼, 악보 곳곳에는 ‘빠르게’ ‘느리게’ ‘단순하게’ ‘열정적으로’ 등 다양한 독일어 지시어가 등장한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어·독일어 사전만 찾아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중 일부 단어는 독일어 고유의 정서와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어, 단어 하나로는 정확히 옮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컨대 한국어의 ‘한’ 처럼 단어 자체가 복저축은행 학자금대출
합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경우다. 그중 필자가 가장 자주 마주하게 되는 단어가 바로 ‘이니히(innig)’다. 이 단어는 독일 정서가 깊이 반영된 독특한 표현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이 쉽지 않다.베토벤, 슈만, 브람스는 서정적이고 내적인 작품에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날 수업에서도 한 학생이 슈만의 피아노 작품 ‘크라이슬레리아나’를 가져왔는데, 악보무료중개
에는 ‘Sehr innig und nicht zu rasch(대단히 진심 어린 감정으로 그리고 너무 급하지 않게)’라는 지시어가 쓰여 있었다. 학생의 악보에는 ‘innig’를 ‘내적으로, 진심 어리게, 친밀하게’ 라는 해석이 연필로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und nicht zu rasch’를 ‘그리고 너무 급하지 않게’라고 해석해 두었다.절반은 맞고 절쉽고빠른대출
반은 아쉽다. ‘내적으로’라는 표현은 한국어 화자의 정서에서는 보통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진심 어리게’ ‘친밀하게’라는 말도 구체적인 연주 이미지로 연결되기엔 다소 막연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리고 너무 급하지 않게’라는 문장과 조합을 생각해 보면, 이 번역은 문맥상 해석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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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r innig und nicht zu rasch(대단히 진심 어린 감정으로 그리고 너무 급하지 않게)’라는 지시어가 쓰인 악보. /IMSLP
독일의 대표 사전인 두덴(Duden)은 ‘in-nig’를 ‘마국민연금 개인사업자
음의 가장 깊은 안쪽에서 느껴지는 감정’ ‘매우 밀접하고 끊을 수 없는 관계’라고 풀이한다. 필자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오며 체득한 ‘innig’의 정서는 그보다도 더 풍부하고 입체적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내적인’ 상태가 아니라,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절절한 감정의 에너지였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담기지예금
않는 응축된 열정이 흐르고 있다.이 단어의 정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데는 언어뿐 아니라 삶의 환경도 한몫했다. 독일에 처음 정착했을 때 필자 역시 많은 관광객처럼 현지인을 보고 ‘무뚝뚝하다’ ‘화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조금만 가까워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의외로 따뜻하더라’ ‘정이 깊다’는 반전의 경험은 독일 여행기를 읽다 보면 흔히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독일의 겨울은 길고 어둡고, 비와 바람이 자주 섞여 있다. 그런 날씨에 밝은 표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독일어는 매우 명료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언어다. ‘그냥 그렇다’는 식으로 감정을 비켜 말할 수 있는 한국어와 달리, 독일어는 생각을 날카롭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로 인해 차갑거나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 신한은행 채용
있지만, 그 속에는말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감정이 있다.이들과 친구가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관계가 맺어지면 그것은 진정으로 가족처럼 깊고 단단해진다. 필자의 몇 안 되는 독일 친구도 수개월, 수년이 지나 다시 만나더라도, 여전히 진심을 다해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Innig’라는 감정은 한국어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학자금대출거치
할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라 말하는 장면. 문자 그대로 보면 다소 위험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 담긴 무한한 사랑과 조용한 감정의 깊이는 바로 ‘innig’의 정서에 가깝다. 혹은 짝사랑하는 이를 마주했을 때 심장은 쿵쾅거리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뚝뚝하게 굴게 되는 그 순간의 감정 또한 마찬가지다.그러니 ‘Sehr innig und nicht zu rasch’는 단순히 ‘내적으로 친밀하게, 그리고 너무 급하지 않게’보다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감정으로, 그러나 그 감정이 너무 흘러넘쳐서 앞서 나가지 않게’라고 번역해야 더 온전한 의미에 가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전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까지 다소 이야기가 길어졌다. 2025년 현재, 뉴스에서는 고물가, 저성장, 청년 실업, 취업난 같은 단어가 일상이 됐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런 시기일 수록 마음이 점점 더 건조해지고,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감정의 깊이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Innig’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안에서는 누구보다 뜨겁고 절절한 감정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 및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그런 ‘innig’한 힘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는다. 말하지 않아도, 드러내지 않아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연주자로서 나는 무대 위에서, 혹은 학생의 연주 한 소절 속에서 그런 깊은 내면의 울림을 마주한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그 감정이 삶을 지탱하고 다시 움직이게 하는 조용한 동력이 된다. 독일어 단어 ‘innig’야말로 외적인 성공과 성장에 치우치기 쉬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내면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꺼지지 않는 그 감정의 불씨가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 한 구절처럼) 지금도 여전히 은은하게 살아 있기를 바란다.